질서는 진리가 될 수 없다.

‘경제학 콘서트’의 저자가 쓴 책이라고 해서 별다른 생각 없이 집어 든 책의 이름은 ‘MESSY(메시)’ 이다.

책의 요점을 먼저 말하자면 – 잘 정리 되고, 조직화 되고, 계획되어 있어야만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모두가 그렇지는 않으며 특히나 창의와 혁신의 관점에서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 라는 내용이다.

이렇게 정리하면 뻔한 내용인 것 같기는 한데, 여러 사례를 살펴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저자의 주장은  15분짜리 TED 강연에서도 살펴 볼 수 있다. 강연에서는 책에서 소개된 이야기 중 단편적 사례를 몇 가지 이야기 한다.

관심은 있지만 책보다 시청각자료(!)를 좋아하시는 분은 여기를 보시면 된다. https://www.ted.com/talks/tim_harford_how_messy_problems_can_inspire_creativity?language=ko
동영상보다 말한 내용을 정리한 글자를 읽는 것이 빠르고 편한 분은 https://www.ted.com/talks/tim_harford_how_messy_problems_can_inspire_creativity/transcript?language=ko 를 살펴보시라.

 

그렇지, 질서가 진리일 수는 없지!

맘에 들어서 사진 찍어둔 페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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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과 일의 대부분이 기존 질서와 이론을 배우거나 나름 질서를 요구하는 그 무엇(논리, 문서, 제안…)을 만들어 와야 했기에 나름 지쳤었는지, 이 문장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질서는 진리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자칫 괜한 저항감만을 일으킬 수 있는 문장이란 생각이 든다. 이 세상이 누군가 생각해낸 목적에 맞게 질서를 유지하며 움직이도록 창조되었다고 생각하거나, 무엇이든 잘 정리되고 조직화되어 있어야 맘이 편한 성격이라면 특히나 불편한 주장일 수도 있겠다.

이 신선한 듯 하면서 불편한 관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무질서와 혼돈이 더 나은 경우도 있다.’라는 주장을 착실하고(?) 설득력 있게 풀어내서  큰 관심을 얻은 책이다.

왜 질서가 진리일 수 없는지를 풀어보면 이렇다.

모두 변해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마치 정지된 스냅샷 사진처럼 딱 정리된 형태를 유지하겠다는 노력은 사실 무의미하며, 오히려 빠르게 변화해나가는 요즘의 환경일 수록 질서와 정리된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노력은 비생산적이 되므로 피해야 한다. – 책 내용을 마음껏 요약.

이 주장은 다르게 말하면…
우주와 자연 생태계에는 혼돈속에 나름 질서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 질서는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고 기준에 맞춘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균형점을 찾아 자리잡은 현재의 상태일 뿐이다.
그러므로 자연스러운 진화와 발전, 혁신의 기회를 많이 만들고자 한다면 인위적인 질서를 유지하려는 것, 통제를 통해서 무엇인가 혁신적 성과를 만들려는 노력보다도 오히려 무질서하게 보여지기도 하는 혼돈, 무계획성, 균질하지 않은 다양성이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어쩌면 더 나을 것이다.

대략 저자의 주장은 알겠으니 이제 조금 더 들어가 보자.

 

무질서의 개인영역과 공공영역

저자는 개인영역의 무계획성, 돌발적인 일 저질러 놓고 보기, 임기응변적 대응을 통해서 어떻게 기회를 만들고 발전을 이루어냈는가의 사례를 다루기도 하는데, 도입부에서 결론으로 옮겨가도 보면 개인의 영역보다는 공공의 영역과 환경에 대해서 보다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의 삶이나 사적인 공간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는 공공에 대한 것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으로 다루어 진다고 보았다. 아마도 아래와 같은…

“내 책상에 있는 것들은 아무렇게나 놓여진 듯 보이나 사실은 꼭 필요한 것이 모두 다 제 자리에 있는 것이고, 남들의 책상에 어지럽게 놓여있는 것들은 게으르고 생각 없는 자들이 방치한 그냥 쓰레기들이다.” – 어디선가 들은 말

무질서나 무계획성을 폄하하는 시선은 항상 있어 왔고,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개인의 사적인 영역은 정리 없이 복잡하게 어지럽혀 있더라도,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공적인 영역에 대해서는 서로 약속된 규칙에 의해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이리라.  그래서 공공의 영역, 함께하는 일들에서 혼돈과 무질서를 통해 창의적 발전과 기회를 넓힐 수 있다는 주장이  더욱 신선하게 느껴진다.

 

무질서 할 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된다.

우리는 기계나 소프트웨어가 자동적으로 수행해주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정신줄을 놓고 살게 된다. 이것은 알려진 계획대로 수행되거나 공공의 약속이 높은 확률로 이행되는 환경에서는 미래의 위험과 이익에 대해 예측해야 하는 노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당연히 기본적인 사회적 약속과 공공의 질서는 물론 필요하다. 신뢰도 낮음에 의한 사회적 비용도 상당하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정신줄 놓고 그저 하던대로 하거나, 예외/돌발 상황 마저도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는 수습하기 힘든 사건에 직면하게 된다.
마치 아케이드 게임의 공략 패턴이 너무 천편일률적이어서, 긴장감 조차도 없이 시시해졌는데 돌연 예외적 아이템과 함정이 나타나서 허망하게 Game Over 되듯 말이다.

스퀘어어바웃 거리의 사례
스퀘어어바웃이라는 혼잡한 사거리가 있었는데, 교통신호와 체계등을 수차례 정비 했지만 매 번 잦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일단 신호등을 없애고, 인도와 차도의 경계도 알아보기 힘들게 바꾸었다.

그러자 행인과 운전자들은 이 사거리에 진입을 할 때 바짝 긴장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제 사람들 사이에서는 ‘스퀘어어바웃 거리는 정말 위험한 곳’이라는 인식이 퍼졌고 사고율은 급격히 내려갔다.
안전한 사거리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추진했던 담당자는 ‘그래서 스퀘어어바웃은 도리어 매우 안전합니다. 보십시오’라고 말하며 눈을 감고 사거리에 뒷걸음으로 걸어들어갔는데, 정말 하나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강요와 통제된 질서는 비효율과 저성과를 만든다.

필요 이상으로 통제 받고 있다는 느낌과 강요된 질서의 환경은 집단과 사회 구성원에게 ‘무작위 속에서 나름대로 원칙을 만들면서 때, 장소, 흐름에 맞는 최적의 답안을 찾는 과정’을 하지 않도록 만들 뿐 아니라, 새로운 성과와 효율을 만드려는 활동을 규정에 어긋난 것으로 만든다. 본질이 아닌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것들을 깔끔히 정리하면 당장은 효율적 질서가 자리잡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통제하고자 하는 당신의 기분 탓일지도 모른다. (한때 유명했던 ‘깨진 유리창의 법칙‘도 사실이라고 신뢰하기엔 어려운 여러 논증의 맹점이 있다고 저자는 반론을 펼친다.)

MIT의 ‘빌딩20’
MIT대학내 ‘빌딩20’은 다소 지저분 하고, 관리되지 않는 건물이다. 연구자가 맘껏 벽에 구멍을 뚫어 타 연구실과 파이프를 연결해도 되고, 어떠한 개조/실험/논의가 허락되는 자유의 장소였다. 그래서 더욱 여러 분야의 특이한 연구를 하는 자들이 왕성한 실험과 생각의 결합을 하는 과정에서 작은 산업 기술과 아이디어는 물론 무기개발까지도 아우를 수 있었다.
반대로 서류 캐비닛 위 올려 둘 수 있는 물건과 그렇지 않은 것 까지 일일이 규정으로 제시하고 실제로 감독 후 위반한 부서나 개인에게 징벌을 가했던 회사는 빌딩20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채점이 필요 없는 분야에 성적을 매기지 마라.

성과주의적 관점의 관리를 위해서 – 종종 성과를 높이기 위한 관리가 아니라 성과를 확인만 하지만 – 단기 성과목표를 만들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측정과 평가지표가 결과적 관점이고 구체적일 수록 목적을 오해한 표면적 결과만 만드는 대안이 증가한다. 마치 페스트 확산을 막기위해 쥐를 잡아 쥐꼬리를 제출하면 갯수로 평가해서 돈을 주겠다고 하니, 사람들이 아예 쥐를 키우기 시작해서 도리어 쥐를 늘렸다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금융감독, 식품위생등 모니터링 관점의 관리가 중요한 부분에선 꼭 필요한데, 제대로 평가형 관리를 하려거든…기준이 너무 많고 랜덤으로 진행되어 이번에 어떤 것을 선택할지 모르게 하거나, 전혀 예상치 못한 때에 예상치 못한 기준에 의해 평가가 이루어지거나 해야한다고 한다.

다양성이 생존의 힘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의 이면에는 수 많은 다양성을 무시하고 선행지표/원인과결과를 한가지로 단순화 하면서 왜곡한 논리들이 있다. ‘하나를 보면 여럿을 알 수 있다’는 방식으로 생각의 폭을 좁히는 주장에 쉽게 현혹되지 말자.

개별적 의견의 다양성보다도 통일된 의견으로의 단일화, 더 나아가 순혈주의로 단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경계하자. 결속형은 팀웍, 단합, 순혈, 단일, 통합을 지향한다. 전통적으로 이것은 더 높은 가치로 우대 받아왔고 본능적으로 이것을 먼저 지향하며 조직이 움직인다. 단기적 성과를 위해서는 이것이 좋아보일 수 있고, 실제로도 당장의 성과를 내는 듯 보인다. 그렇지만 (결속의 유지를 위한)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것 때문에 정답과 투명성을 추구하지 않다보면 존재하는 여러 집단간 사이를 연결해주는 네트워크에 의존하지 않게되며, 결국 우물안 개구리가 되고 매너리즘에 빠져 생존의 지속성을 갖기 힘들다.

다양성이 풍부한 사회와 조직은 단일 가치기준/규칙과 통제된 질서를 우선시 하는 결속형 보다 구성원의 상대적 불안감이 높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스트레스는 생각이 깨어있게 하고, 새로운 시도와 가장 최적의 답을 찾기 위해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중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간혹 단기 프로젝트에서도) 조직의 다양성이 개별적 재능을 능가한다. 

메시를 바탕으로 하는 성과형 네트워크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 혼돈/모호/정의되지 않은 환경과 과제에 지속적으로 도전한다.
  • ‘긴장’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사람, 반대의견 등 ‘누군가 이견을 제기할 것이다.’ 라는 생각은 스스로 단정적이며, 편견에 따른 답습에서 벗어나 보다 투명하고 논리적인 주장을 펼치게끔 한다.
  • 그래서 프로페셔널을 지향하는 ‘다양성을 갖추고 제 일을 제대로 하는 조직’이 ‘편한 사람들끼리 뭉쳐 한생각만하는 조직’보다 우세하다.
  • ‘공동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혼란스럽더라도, 소속이 어디여서 공을 누가 차지할 것인지도 상관없게, 그리고 지금 목표달성이 너무 중요하고 생존을 위한 노력이 요구될때, 결속형 집단들 마저도 서로 연결되며 문제를 풀어가며 성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표를 위해 탄생한 팀이 1단계 ‘화합’만 바라보고 멈추게 되면서 ‘화합을 위한 친목 모임’이 되버리고 만다.

마지막 저자의 제안부분은 이만 줄이고 다음 기회에 조금 더 정리해보서나 이야기 나눈 내용 정리해야겠다.

Written by John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