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능과 이기심- 테레즈 라캥

들어가며

책을 읽고 글을 쓰기에 앞서 몇 가지 기사들이 떠오른다.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 개가 너무 배고파 자신의 새끼를 먹었다는 내용의 기사, 또 하나는 북극곰이 너무 굶주린 나머지 자기 새끼를 잡아먹었다는 기사. 비극이다. 오죽했으면 자기 새끼를 먹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16022602059_0

온난화의 비극…새끼 북극곰을 잡아먹는 북극곰

하지만 우리는 생존을 위해 자신의 새끼를 죽였던 개의 도덕성을  탓하지 않는다. 북극곰의 모성애가 부족했다며 비난하지도 않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동물의 본능에 실망하지도 않는다. 동물들에게 생존을 위한 행동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누군가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 수 있다. 먹지 않으면 굶어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이성적인 단어로 설명하는게 더 힘든 일 아닐까?

동물들의 생존을 위한 필연적인 행위에는 도덕젓 잣대를 들이댈 수 없기에 원망 또한 할수 없다. 단지 원망스러운 것은 그들을 죽음앞까지 내몰은 극한적인 상황이다. 자식을 먹게된 것은 행위의 목적이 아니라 필연에 의한 어쩔수 없는 결과였다. 에밀졸라의 <테레즈라캥> 도 마찬가지다.

줄거리

f1jmjwc
드가의 작품 <실내>는  테레즈와 로랑의 첫날밤에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사건은 매력적인 청년 로랑을 보자마자 정욕에 불타오른 테레즈가 로랑과 함께 자신의 남편 카미유를 살해하는데서 시작된다. 카미유는 몸이 늘 허약해서 어머니 로랑의 극진한 보살핌아래 자란 청년으로, 테레즈는 늘 핏기 없는 카미유를 속으로는 혐오해했다. 그래서 그런지 건장하고 남자다운 체격의 로랑을 보자마자 피가 끓어오르는 강한 욕정을 어찌할 수 없었다. 이 책은 테레즈와 로랑이 ‘사랑’ 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죄가 불러일으키는 비극의 연쇄다. 내용으로만 봤을 때는 요즘 아침드라마에서도 볼 수 있는 스토리다. 만약 서문을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은 끝이 허무한 막장드라마처럼 느껴졌을 지도, 누군가에겐 권선징악으로 읽혀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대로 책을 읽으려 한다면 서문에 쓰인것 처럼 테레즈와 로랑을 동물에 가까운 존재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내면의 본능에 집중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읽다보니 테레즈와 로랑의 이기심, 공포 등 심리묘사에 공감할 수 있었다.  대화의 기저에서 움직이고 있는 이기심과 욕망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공포, 이기심, 욕망, 공포 등… 혹시 이런 심리들이 인간의 의식적인 양심 밑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성질인걸까.

<테레즈라캥>에서 나는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기질을 연구 하기를 원했다. 이 책 전체는 바로 그것을 담고 있다. 나는 자유의지를 박탈당하고 육체의 필연에 의해 자신의 행위를 이끌어가는, 신경과 피에 극단적으로 지배받는 인물들을 선택했다. 테레즈와 로랑은 인간이라는 동물들이다. 그 이상은 아무 것도 없다.    – [테레크 라캥] 에밀졸라의 서문 중.

젊은 남자의 신중한 본능이 다시 눈을 떴다. 

당신 말이 옳아. 어린애 처럼 굴면 안되지. 아! 당신 남편이 죽기만 한다면… 우리는 결혼하고 아무것도 두려울 것 없이 우리의 사랑을 실컷 즐길 수 있겠지. 그런 달콤한 생활을 할 수 만 있다면!”  – 93쪽 

d0008582_4a03036295516
<테레즈 라캥> 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필연의 결과 : 죄책감

(살인후)

벽난로 그들 사이에는 넓은 공간이 있었다. 고개를 돌리면 카미유가 의자를 가져와서 공간을 차지하고 으스스하게 야유하는 태도로 발을 쬐고 있는 처럼 여겨졌다. 첫날밤 가졌던 환상은 매일 다시 나타났다. 사람이 이야기할 때도 비웃으며 끼어드는 시체, 언제나 거기 나타나는 무섭게 변형된 얼굴 때문에 그들은 끊임없는 불안에 견디게 괴로웠다. -230 

그들은 결국 서로의 육체에 이끌리는 감각에 충실했다. 둘의 합은 피해갈 수 없는 필연적인 행위였고 살인은 필연적인 행위의 목적이 아닌, 어쩔수 없이 안타까운 결과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생각보다 잔인했다. 벗어날 수 없는 생활 공간에서 서로를 볼때마다 살인에 대한 끔찍한 기억이 반복된다. 만약 본능이 완벽하게 그들의 양심을 억제 했다면 어땠을까?  살인 에도 테레즈와 로랑사이에는 어떤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동물적이지 못했고 남아있는 아주 작은 양심이 비극을 초래했다.

사그라진 양심은 죄책감과 공포가 되어 돌아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공간에서 꿈틀거린다. 그림, 고양이의 눈, 침대와 이불 사이 작은 공간에도 죽은 카미유의 푸른 낯빛이 느껴진다. 작가는 한정된 공간 속 에서 서서히 강해지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냉담하게 써내려가며 독자에게 이 비극의 끝에 과연 누가 살아남을지 지켜보라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책 한권에 걸쳐 숨막히는 심리전을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기질’은 본능의 상호작용이 아닐까?

에밀졸라는 서문에 인간의 성격이 아닌 기질을 연구했다고 말했다. 기질은 무엇이고, 그렇다면 성격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왜 심리전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걸까. 마지막장 까지 다 읽고 다시한번 서문을 읽어보니 느낌적인 느낌으로(?) 기질에 대한 어슴푸레 윤곽이 잡힌다. 내가 이 소설을 통해 느낀 성격과 기질에 대한 특징을 서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성격은 이성의 작용인 ‘배려’를 통해 타인과 하나 될 수 있는 영역이다. 마치 블록과 같아서 타인과 합쳐지고 분리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기질이 다른 두 사람은 일종의 화학적 변화를 통해 하나가 된다. 서로에게 동시에 영향을 주며, 한번 섞이면 되돌릴 수 없다.

기질은 성격보다 감정적이고 본능적인 영역이라고 본다. 내가 심리전을 보는 듯 했다고 느꼈던 이유도 한 공간안에 마주한 서로다른 두 본능이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며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변화하는 과정이 그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인물들을 통해 본능의 상호작용을 다루고 싶었던게 아닐까. 한결같은 얼굴 아래에 끊임없이 변화하는 본능의 움직임을.

written by Julia / Baw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