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가 말하는 법 – 소통과 논쟁에 대해서…

말 잘하는 것으로 유명한 ‘손석희’의 대화기록들을 바탕으로 ‘말 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탐구한 책입니다. 물론 저자는 ‘소통’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이미 한 상태였구요…그 덕분에 12가지 통찰을 뽑아서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블로깅에서는 여러 발췌한 문구들을 소개하면서 정리하려고 합니다. (나름대로 스토리를 거의 다 썼다가, 내용을 날려먹었거든요…OTL)
우리는 흔히 ‘저 사람 말 잘한다~’, ‘달변이다’, ‘화술이 뛰어나다’ 등의 이야기를 하거나 듣는데요, 이것과 ‘소통’을 잘 한다와는 매우 다른 것임을 저자가 강조합니다.
아마 여러분 같아도 그런 화술의 실험대상(?)이 되는 것을 달가와 하지 않을 것이고, 누구나 마찬가지일것 입니다.
‘말 잘한다.’ = ‘의사소통을 잘 한다.’ 가 되어야 한다.

 ‘소통’이 중요한 때 입니다.

요즘은 정치나, 사회문제에서나 ‘소통’의 문제가 많이 이야기 됩니다. 회사에서는 괜히 소통이라는 말 보다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이 많이 쓰여지고 있습니다만…

“혼자 밤새워 일해서 머릿속에 든 것만 많은 사람은 사회가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답답해한다. 그러나 사회는 자신의 가치를 보여줄 능력을 갖추지 못한 그 사람이 오히려 더 답답하다.”
 “이 시대가 말 잘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가 된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있다. 바로 협업 사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헨리 포드의 시대에는 사람들 간의 분업이 있었을 뿐 협업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가 사회에서, 회사에서 또 가정에서 소통을 어려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학생시절 부터, 열심히 두뇌에 지식만을 열심히 넣기를 강요당했지, 잘 꺼내어 정리/편집해서 상대방이 쉽게 알아듣도록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라고 이야기 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다가, 덜컥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회의/협상/발표/보고/설득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면, 그저 생각을 나열하기만 해서 읽거나 듣는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고자…설득당하면 마치 자신이 무너지는 것인 것 마냥 마음만 앞서 목청껏 주장하기만 한다고 합니다.

책 ‘손석희가 말하는 법’에서 ‘손석희’는 토론의 사회자로서, 또 중재/중개자로서 대화를 풀어나가다 보니, 우리가 흔히 접하는 1:1 또는 1:N 으로 직접적인 주장하는 사람이 아닌 상황이기는 합니다만, 나름대로 통찰을 뽑아냈다고 생각합니다.

자…그럼 말 잘하는 법이란…

12가지 모두 정리는 힘들고 6가지만 뽑았습니다.

1. “스스로 상대방과 싸우지 마라. 상대방이 반대의 생각과 싸우게 하라.”

(무늬만 동물애호가 이면서, 사실은 인종차별주의자로 보여지는) 브리짓 바르도와의 2001년 12월 3일 인터뷰(새창 링크)가 있습니다.

손석희는 브리짓바르도에게 ‘OOO란 생각들도 있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고 질문하면서, 브리짓바르도가 스스로 자기 주장을 검증하게 만듭니다.
그러자 그녀는 스스로 어찌할바를 몰라서 전화를 끊고 도망가게 되는데요 (이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통쾌해했지요 ^^)
그런데, 우리들은 대부분 토론과 논쟁을, 특정 누구와 ‘나’와의 대결구도로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논쟁은 서로 입장이 다른 사람들 간에 상대방 주장의 논리적 모순점을 지적해 자신의 주장이 타당함을 입증해가는 과정이다. 상대방은 자연히 나의 주장이 틀렸음을 지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나는 자존심과 사회적 위신에 손상을 입고,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를 갖게 된다. 평소에는 말 잘하고 똑똑한 사람들이었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논쟁이 말싸움이 되고 결국에는 감정싸움으로 번진다.”
 이것은 ‘인신공격의 오류’라고 합니다. 어떤 일, 문제, 논리를 바깥에 꺼내어 놓고 사람이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이나 논리를 자기와 일체화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사람과의 대결 구도로만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주장에 대해서 논박하기 보다는 그 사람의 과거 행적, 자세, 말 바뀜등 왠지 꼬투리를 잡아서 상대를 깎아내리려는 싸움으로만 보이기도 합니다.
이래서는 건설적(?)인 대화는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2. 주장부터 늘어놓지 마라.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실을 먼저 말하라.

그런 욕심들 때문에, 주장만 먼저 말하고 우기기만 하게 됩니다. 이것을 벗어나서 소통을 하려면 ‘주장을 사실로 바꾸어 말하고, 이러한 사실을 먼저 말한다.’ — 바로 이 원칙을 먼저 생각하라고 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손석희가 한 말이 있다고 합니다.
“토론이라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합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해서 다른 사람과 접근하든가 설득하든가 하는 과정이 이뤄져야 하는 것인데, 우리 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은 ‘카타르시스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설득을 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생각을 일방적으로 주장만 하면 되는, 일종의 ‘배설 커뮤니케이션’인 겁니다.”
그러므로, 사실의 나열만으로도 강력한 주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BRIEF 순서원칙(새창 링크) – 배경사실>논리의이유>근거정보>결론>해야할것 – 에 의해서 말하는 것만으로도 주장이 이루어지는 것과 말이죠.
그리고, 주장이 나온다음에도 계속 사실을 검증합니다.
논쟁에서 손석희가 자주 하는 말들은 매우 짧다.
    왜 그렇습니까?
    어떤 점이 잘못되었다고 보시는 건지 말씀해주시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이신지요?
    손석희가 자주 하는 이 말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주장을 말하는 사람에게 사실을 말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주장을 늘어놓는 사람들에게 이제 그 주장을 뒷받침할 사실과 데이터를 제시해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이 내놓는 사실을 확인하여 상대방의 주장이 타당한지를 판단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버릇처럼 항상 이렇게 말한다.
    예를 든다면요?
    예를 들어서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최대한 사실을 중심으로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사실에도, 비슷한 사례에도 공통분모가 있어야 하나봅니다.

3. 상대방의 주장을 상대방이 알고 있는 사례에 적용해 스스로 답하도록 하라.

하지만, 배경사실이나, 근거정보가 서로 다르게 알고 있는 것이라면 소통의 진전이 아니라, 다른 길로 새어나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서 서로 알고 있는 사례에 비추어 검증하고 토론하는 것이 소통에 유리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각차가 있을지도 모르곘습니다만, 소통/논쟁에서 필요한 마음가짐이 강조됩니다. 


4. 다수를 인정해주라. 하지만 그들에게 합리성을 물어라.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검증해낼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못하겠다…그저 다수결이니 따르라…고 한다면 이것은 그저 권력에 의한 야만적 소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손석희는 다수와 소수라는 현상과 옳고 그름이라는 가치 판단을 명확하게 구분 짓고 이야기 합니다.

2005년 1월 8일 〈시선집중〉에서 손석희는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전 지도층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민주 사회에서 지도층은 없으니까요.
사회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권력층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도층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저자는 ‘안철수’로 부터도 비슷한 관점을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모든 직원에게 존댓말을 씁니다. 회사에서 CEO는 제일 높은 사람이 아니라 단지 역할만 다른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 수평적인 사람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하는 일이 있고, 나는 대외적으로 회사를 대표해서 하는 일이 있는, 역할 분담만 다른 것이지 전혀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게 제가 가진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요즘 무엇을 하시는지 뉴스에서 잘 안보입니다. -.- )

5. 어떻게 들릴지를 생각하라.

 “우리나라에서 언론의 자유가 (실효성 있게) 보장된 이래, 지도자의 발언이 문제된 경우 이에 대한 역대 지도자층의 공통 반응이 있다. 원래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언론에서 전달하는 과정에서 본뜻이 와전되었다는 것이다. 무슨 뜻일까? 돌려서 말하기는 하지만, 결국 자신은 문제될 만한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더 내심을 말하면, 자기는 제대로 말했는데 듣는 쪽에서 잘못 듣고 잘못 전했다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말한다’고 다 ‘말’이 아니고, 못알아 듣는 사람의 잘못 보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어떻게 들릴지 생각 좀 하고 말하라는 뜻입니다.

6. 서로 다른 생각들을 관대하게 수용하라. 이성과 합리의 지렛대로 하나 됨의 힘을 얻어라.

 “한국 사회의 건전한 토론 문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은 불신과 다름에 대한 관대함의 부족입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의사소통의 부재입니다. 한 서클 안에서 끼리끼리 소통은 이뤄지지만 이 서클과 저 서클 간의 소통은 단절돼 있습니다. 이런 의사소통의 복원을 위해서는 서로 인정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합니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자신감의 부족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 서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손석희
바꿔 말하면 ‘생각 좀 바꿔라’인데, 아무래도 많이들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의외로 재미(?)있었던 부분.

휴…내용이 자꾸 길어지는데요, 기억에 남는 부분 소개해드리면서 글을 어서 정리해야겠습니다.
“아소 장관은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희망했다는 망언을 한 바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들은 언제까지 이런 자의 헛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일까요? 여기서 ‘자’는 ‘놈 자(者)’ 자입니다.”
– 손석희, 뉴스 클로징 멘트에서
 “우리는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애쓰지만, 반대로 상대방에게 설득당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대화 중에 우리는 “나는 수긍이 안 되니 나를 설득해보세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건 우리의 말과 생각일 뿐이고, 마음은 이미 ‘네가 뭐라고 말해도 나는 설득되지 않겠다’라고 다짐하고 있다. 나는 설득하려고 애쓰지만 상대방은 설득당하지 않으려고 나보다 더 애쓴다. “
노무현은 이 시점에서 다른 국회의원들과 달리 증인에게 사실대로 말하라고 소리 지르지 않는다. 노무현은 이렇게 말한다.
“증인의 표정이 특별히 긴장되는 것을 모두 보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좋습니다. 그 정도 물어두겠습니다. 본인의 기술로서는 더 그 부분을 증인 입으로 일해재단에 기금으로 준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받아낼 수가 없어서 그 부분에 관한 본 위원의 질문은 일단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_ 제5공화국 정치권력형 비리조사 특별위원회 회의록 제15호
이제 사람들은 유찬우의 자백을 듣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무엇이 진실인지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치밀한 논리로 유찬우를 벼랑 끝으로 몰아놓고 칼을 거두어버렸다. 이제 유찬우는 노무현과 육탄전이라도 벌여서 진실이 그려진 모래사장을 덮어버리고 싶지만, 노무현은 이미 링 밖으로 나가버렸다.
홍준표: 혹시 우리 손석희 교수는 출마할 생각 없으세요? 정말 생각이 있으면 한나라당에서 모시겠습니다.
손석희: 저는 ‘영희’가 아니라서요.
– 2011년 서울특별시장 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출마에 대해 ‘후보난립’이라고 비난했던 홍준표와 그의 유불리에 따라 매도했던 모순에 조명을 비추면서.
홍준표: 허허, 참나. 어이고 손 박사 왜 웃어요, 아침에. 나도 좀 어이가 없어가지고 웃음 나오구만.
손석희: 저 박사 아닙니다.
홍준표: 예, 예.
손석희: 요즘은 제가 이렇게 그냥 넘어가면 나중에 학력 위조로 걸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바로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홍준표: 예, 예. 알겠습니다.
– 2011년 10월 20일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당시 한나라당의 학력 네거티브 전략의 모순에 대해.
박근혜: ……..새롭게 거듭나는 정당으로 모든 당력을 국민의 생활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꼼꼼히 챙기는 그런 정당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 그렇게 할 거구요.
손석희: 과거보다는 미래에 대한 약속을 하시겠다, 그런 말씀이시군요?
박근혜: 예.
손석희: 그런데 유권자들의 판단은 과거를 보고 하는 판단일 텐데요?
박근혜: 저하고 싸움하시는 거예요?
손석희: 그렇진 않습니다.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 2004년 4월 9일 <시선집중>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사실이 없이 주장만 반복되는 상황에서…
 첫째, 아는 것이 많기 때문에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한다.
둘째, 생각 전달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에 상대방이 내 생각을 이해하고 수긍하지 못한다.
셋째, 상대방이 내 생각의 오류를 지적하는 낯선 상황에 처하면 감정적인 적개심이 앞선다.
    결국 내 생각이 옳은데 상대방이 나쁜 사람이어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지적 성숙기에 이러한 기형적인 지적 능력 상태가 형성되면, 성인이 되어 아무리 말을 많이 해도 생각 전달 능력을 향상시키지 못한다. 이후에는 설득, 토론, 협상이라는 이름만 달았을 뿐 내가 내뱉는 이야기들은 모두 내 생각을 보호하기 위한 공격 수단이고,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쏟아 붓는 소음이 된다. 동시에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의 발로에 불과해진다.
휴…길군요. 여전히 스크롤압박성 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글을 정리하고 보니, 재미있는(?) 토론에 대한 예시가 특정 정당에 많이 몰려있네요.
최근 어느 두 연예인의 대화에 대해,
“이태임-예원 욕설 논란에 손석희가 한 멘트” 내용도 있더군요.

http://m.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213829&ref=m.facebook.com
손 앵커는 “두 여성의 욕 대거리에서 우리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축소판을 봤다고 하면 지나친걸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역지사지가 없는 자기 중심적 사고, 권위주의, 비아냥 같은 것들이 우리가 갖고 있는 부정적 커뮤니케이션의 속성들 아니던가요?”라고 말했다.
손 앵커는 “욕이 애칭이나 농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곡해와 불통의 산물일 때 욕이 갖는 사회학적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고 말했다. 

 끝.